첫 만남.
기다리던 물건과의 만남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건과 함께 다가온다. 갑작스런 지인의 부음과, 이로인한 유품 정리 목록에서 주인을 찾던 카메라를 내가 인수하게 되었다. 찾고있던 카메라 중 하나가 마침 그분에게 있었던 것. 짧지만 짧지 않았던 사연많은 그분의 미국생활 중, 현지에서 사용하다 한국으로 함께 돌아온 카메라가 Veriwide 100 이었다.
Brooks-Plaubel Veriwide 100은 어떤 카메라 일까?
카메라를 만든 4개의 회사, 과연 환상의 콜라보 였을까…?
이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몇개의 사용기를 웹에서 잡히는 대로 읽다보면, 1959년부터 미국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카메라로 6~7년정도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Brooks-Plaubel 두 회사의 합작 외에도 몇가지 회사의 도움이 있었는데, 렌즈는 Schneider에서 만든 SuperAngulon 47mm 광각 렌즈를 사용했고, 전용 파인더는 Leitz에서 생산했다(맞다. Leica의 그 Leitz다). 무려 4개사의 힘을 합쳐 만든 카메라인 Veriwide 100은 협력이 무색하게도 섭섭하기 그지없는 바디의 빌드퀄리티를 자랑한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면 쓸데없는 치장에 집중하지 않고, 본연의 기능에 집증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으로, 왠지 모르게 미국식 실용주의-미국식 픽업트럭(?)의 실용성-같은게 느껴지기도 한다.
발군의 렌즈 Schenider의 Super Angulon
바디에 고정식 렌즈로 장착된 Schneider Super Angulon 47mm 렌즈는 개방조리개가 F8이며, 최대한 조였을 때에는 F32로 평소 사용하는 렌즈들 보다 작은 조리개 값으로 shift되어있다. 이 때문에 어두운 환경 보다는 빛이 좋은 날 야외에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이게 아니라면 삼각대와 함께 조리개를 조여 야간에 찍는 사진에도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 즐겨찍는 사진이 아니다 보니 시도해 본 적은 없다. 렌즈를 봤을때 코팅 색이 도드라 지지는 않지만 충실한 코팅 덕에 광선의 조건에 크게 영향받지 않고, 촬영시에 좋은 화질의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셔터는 렌즈에 달린 리프셔터로, B~1/500의 구간에서 사용할 수 있고 조리개와 함께 렌즈뭉치에서 조절이 가능하다. 그리고 셔터 장전을 위해서는 렌즈뭉치에서 레버를 이용해야 하는데, 대형카메라 렌즈의 조작 방법을 생각해 보면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광각,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35 포멧으로 환산했을 때 약 18mm의 화각의 렌즈이다 보니 사진 주변부 광량 저하가 도드라 질 때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센터필터를 사용해야 하고, 센터필터 없이 사용하려면 조리개를 11 이상으로 설정해 촬영을 해야 주변부 광량저하가 두드러 지지 않는다. 아래 작례와 함께 소개하겠지만, 결과물들은 컬러에서는 생생한 색으로 사진을 돋보이게 해주고 흑백에서는 보기 편한 컨트라스트로 균형잡힌 표현을 해준다. 조리개를 11 이상으로 조이는 경우에는 화면의 구석구석까지 디테일한 표현을 해주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인더는 RF의 명가 Leitz에서
어둠상자의 역할에 충실한 바디는 프레이밍이 가능한 별도의 장치가 없다. 액션 파인더 형태의 프레임과 가늠자의 조합으로 간이 프레이밍은 가능하지만, 뭔가 M16을 쏠 때 가늠자를 들여다 보는 느낌은 파인더를 들여다 본 사용자를 아연실색 하게 만든다. 이런 소비자의 반응을 출시당시에도 어느정도 예상을 했는지, 당시 RF 카메라의 정상을 지키고 있던 Leitz(Leica)와 합작으로 전용 파인더를 만들어 함께 출시한다. 610이라는 애매한 비율을 반영한 파인더인 덕분에 유일무이한 비율의 프레임 라인이 특징이고, 나름 전용 파인더 티를 내는 위쪽의 각인도 재미있다. 파인더의 성능은 기존에 광각용으로 출시된 Leica 파인더와 동일하다.
정리하면…!
바디는 어둠상자와 필름 이송의 기능에 충실하고, 렌즈는 렌즈 나름의 광학성능과 셔터와 조리개 역할에 충실하다. 거기에, 부족한 카메라의 프레이밍은 별도의 파인더를 통해 보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렌즈의 셔터 장전 레버와 필름 이송의 연계가 부드럽지는 못해서, 중고로 구한 바디에서 이런 부분이 속을 썩이는 경우가 있다. 조작은 ①필름 와인딩, ②렌즈의 셔터 장전 레버 넘기기, ③셔터 속도/조리개 설정, ④셔터 릴리즈 순이다. 잘 관리된 바디는 조작이 불편해도 사용을 못할 수준은 아니다. 아니면 내가 불편한 카메라에 너무 관대해 졌거나.
카메라 외관
결과물 Review
컬러
흑백
Schneider의 렌즈 덕분인지 사진의 해상력이 매우 좋다. 컬러 표현은 필름사진의 특성상 종류에 크게 좌우되지만 Provia100 필름을 기준으로 보면 매우 투명하게 표현되는 느낌이다. 하지만 Velvia와 같은 고채도 필름과 만나게 되면 이 렌즈도 별 수 없이 진득한 색을 내준다. 일부 렌즈들은 렌즈 자체의 채도 표현이 연해 벨비아와 만났을때 약간 진한 정도로 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렌즈는 채도가 떨어지는 -나쁘게 말하면 색 바랜- 정도 까지는 아닌것 같다. 흑백필름도 보기에 적절한 컨트라스트 표현을 해주는 덕에 흑백필름임에도 불구하고 입체적인 표현을 해준다. 일부 사진에서는 역광 상황인 경우도 있는데 확실히 컬러와 흑백 모두 순광에 비해 컨트라스트가 떨어진 표현이 되는건 아쉬운 점이다. 다만, 60여년 전의 렌즈라는것을 감안하면, 이정도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이 렌즈는 필름들을 압도하는 렌즈만의 개성이 있기 보다는 필름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해 주는 참된 조력자라 이야기 하고 싶다.
마무리 하며
괜찮은 렌즈 성능과 독특한 화각에도 불구하고, 촬영 가능 컷수가 7컷이라는 아쉬움과 불편한 조작감에 사용량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초광각의 매력도 이제는 너무나 흔해져 버렸고, 디지털 카메라의 선명한 표현 덕분에 깔끔하고 선명한 이미지의 중형 필름사진의 매력도 예전에 비해 큰 끌림을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넉넉한 크기의 필름위에 시원한 광각으로 촬영된 이미지들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할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간 촬영한 이미지들을 다시 돌아보며 Veriwide 100에 다시 눈길이 가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