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Biogon의 보급형으로, 이제는 써보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렌즈로.
일반적으로 안정적인 컬러감을 보여주는게 Carl Zeiss 렌즈의 특징이다. 다시 말하자면 도드라지는 색 표현 보다는 정직하고 중립적인 색 표현을 해준다는 이야기 이다. 그런데 이런 Carl Zeiss 렌즈군에서 독특한 색 표현이 특징인 렌즈가 있으니 그 렌즈가 바로 Planar 렌즈이다.
Planar 렌즈는 비오곤을 구입하기 곤란한 구매자를 위해 개발된 렌즈였다. Biogon은 당시 상당한 고가에 판매가 되었지만, 반스탑 정도의 조리개만 포기하면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Planar 렌즈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유는 불분명 하지만 당시의 매력적인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 렌즈는 인기를 끌지 못했고, 그 덕에 생산량도 적어, 지금에 와서는 개체수가 작아 구하기 힘든 귀한 렌즈가 되었다. 시장에서 귀해진 덕분에 가격 또한 비오곤보다 높게 거래가 되고 있으니 렌즈 팔자도 세월에 따라 귀하고 흔한 위치가 뒤바뀌기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외관
전후 서독의 Carl Zeiss의 렌즈 답게, 21mm 35mm(전후형) 비오곤과 유사한 디자인으로 제작되었다. 묵직한 경통과 크롬 마감은 언제봐도 놀라울 정도로 반짝거린다. 여타의 Carl Zeiss 렌즈들과 다른 특징은 코팅 색인데, 다른 렌즈들보다 더 진하고 화려한 코팅색을 볼 수 있다. 이 덕분인지 촬영 결과물 중 컬러사진의 색 표현이 상당히 독특한데, 실제 결과물은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이제 렌즈의 세부를 살펴보자.
단단한 조작감, 개성있는 발색, 믿을만한 성능. Carl Zeiss의 렌즈답게 신뢰감이 가는 렌즈. 이제 결과물을 한번 확인해 보자.
작례 – Color Negative
컬러 네거티브에서의 발색은 상당히 화려한 편이다. 광선의 상황에 따라 어느정도 편차가 있을수 있겠지만, 흐린 조건 아래에서 촬영을 한 필름이라도 각자의 색이 본연의 빛을 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으로 이야기 하자면, 색을 진하게 칠한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작례 – BW
흑백에서는 화사한 표현보다는 묵직하게 가라앉은 톤을 보여주는게 특징이다. 2월의 낮게 가라앉은 겨울하늘 아래에서 촬영해 그런 모습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수도 있겠으나, 사진을 촬영하고 만져보면 전체적인 톤이 어두운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보인다. 화사한 느낌보다는 진중하고 묵직한 느낌을 준다. 컬러 네가티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사진을 즐길 수 있다.
작례 – Color Positive
컬러 슬라이드에서는 상당히 발색이 독특하다. 그 중에서도 초록의 표현이 독특한데, 맑고 투명한 느낌의 초록이 아닌 남색계열을 초록색에 섞어놓은 듯한 표현을 볼 수 있다. 흐린날 혹은 그늘 속에서 촬영한 슬라이드 필름의 경우 진하지만 차분한 느낌의 색이다. 다른 특징으로는 Red 계열의 발색이 상당히 도드라 지는데, 이는 그늘에서나 빛이 좋은 상황 모두에 해당된다. 맑은 날에는 화사하게 강렬하고, 그늘 속에서는 농도가 짙지만 선연하다.
마무리 하며
한 해 동안 사용한 이 렌즈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해질녘 황금빛을 닮은 렌즈라 말하고 싶다. 아침에 맑은 기운을 머금고 노랗게 떠오르는 햇빛을 연상하게 되는게 일반적인 Carl Zeiss 렌즈라고 한다면, 플라나는 하루를 마치고 서쪽으로 넘어가는 해의 황금빛과 닮은 렌즈라는 생각이 든다. 투명하고 맑은 금빛 보다는 누른빛이 돌며 진득하게 빛나는 황금의 세속적인 느낌 말이다. 상황에 따라 사진을 보여주는 특징이 덕에, 촬영자가 이런 특성을 어떻게 활용 하느냐에 따라 여러가지 표정의 사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렌즈라 말하고 싶다.
더 좋은 표현을 하기 위해 여러가지 조합을 많이 생각해 보고 정리해야 하겠지만, Planar 렌즈에 대한 사용기를 찾아보기 힘든 지금, 그래도 어떤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사용기는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몇장의 사진과 함께 정리해 본다.
Fin.
※ 참고